솔직히 저는 호크아이가 마블 드라마 중 가장 아쉬운 작품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초인도 아니고, 솔로 무비 한 번 못 받은 캐릭터인데 드라마라고 얼마나 잘 만들겠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다 보고 나니 완다비전, 팔콘과 윈터 솔져, 로키를 다 본 후에도 호크아이가 가장 좋았습니다. 지쳐 있는 히어로를 이렇게 잘 그려낸 작품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평범한 인간이 히어로가 된다는 것의 무게
마블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에서 클린트 바튼, 즉 호크아이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캐릭터입니다. MCU란 마블 스튜디오가 구축한 공유 영화·드라마 세계관으로, 각각의 작품이 하나의 거대한 세계 안에서 연결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 안에서 아이언맨은 천재 공학자, 토르는 신, 헐크는 감마선 피폭 변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호크아이는 그냥 활을 잘 쏘는 사람입니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세상은 블립(Blip)에서 회복 중입니다. 블립이란 타노스가 인구의 절반을 소멸시킨 사건으로, 5년 뒤 어벤져스가 이를 되돌린 후 전 세계가 혼란 속에서 일상을 재건하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 혼란 속에서 호크아이는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 지극히 평범한 바람을 가진 남자로요.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옐레나가 블립 현상을 겪는 장면입니다. 그냥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단순한 시각 효과인데, 그 5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한 사람의 삶을 덮쳐버렸는지를 짧은 장면 하나로 설명해냈습니다. 지금까지 MCU에서 블립을 이렇게 감각적으로 표현한 장면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단순한 시즌 마케팅이 아닙니다. 호크아이가 짊어지고 있는 죄책감, 특히 블랙 위도우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크리스마스라는 계절과 연결됩니다. 크리스마스는 죄를 씻어준 존재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 계절에 호크아이가 자신의 과거, 즉 로닌 시절의 어둠과 마주하고 그것을 태워버리는 구조는 꽤 의도적인 설계라고 봅니다.
버디무비 구조와 세대교체의 명암
이 드라마는 버디무비(Buddy Movie) 형식을 취합니다. 버디무비란 성격이나 배경이 다른 두 주인공이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 성장하는 장르 공식입니다. 팔콘과 윈터 솔져, 로키도 같은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호크아이의 파트너는 케이트 비숍입니다. 2012년 뉴욕 치타우리 침공 당시 어린아이였던 케이트가 호크아이를 보고 영웅을 꿈꾸게 되었다는 설정인데, 이게 단순한 팬심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양궁과 무술을 섭렵한 캐릭터로 성장했다는 점이 설득력을 줍니다.
헤일리 스타인펠드의 케이트 비숍은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잘 살아났습니다. 통통 튀는 에너지와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조화를 이루는 캐릭터인데, 이 드라마의 유머 대부분이 케이트에게서 나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클린트 바튼이라는 캐릭터가 워낙 진중한 인물이다 보니 단독으로는 드라마를 이끌기 버거웠을 텐데, 케이트가 그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약간의 아쉬움도 있습니다. 로키 드라마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는데, 제목은 기존 캐릭터의 이름인데 이야기의 무게 중심은 새 캐릭터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건 MCU가 페이즈 4를 통해 의도적으로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기존 팬층이 탄탄한 캐릭터를 앞세워 신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방식이죠. 전략적으로는 이해하지만, 호크아이를 기대하고 틀었을 때 호크아이 본연의 매력이 좀 더 전면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마블 드라마가 영화에 비해 액션 퀄리티가 다소 낮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회당 제작비가 2,500만 달러, 총 1억 5천만 달러라는 영화급 예산이 투입됐다고 하지만([출처: Marvel Studios](https://www.marvel.com)), 실제 화면에서 느껴지는 액션의 밀도는 극장 영화와는 차이가 납니다. 대신 이 드라마는 스케일을 낮추고 인물의 감정선을 깊이 파고드는 방향을 택했고,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졌다고 봅니다.
킹핀의 등장과 MCU 멀티버스 서사 확장
드라마의 최종 빌런으로 등장하는 킹핀(Kingpin)은 이 작품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 중 하나입니다. 킹핀이란 뉴욕 범죄 조직 전체를 장악한 거물 범죄자 캐릭터로,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오래전 넷플릭스 데어데블 시리즈에서 연기했던 그 인물입니다. 솔직히 저도 킹핀의 등장이 뜬금없다고 느꼈습니다. 데어데블에서 그렇게 입체적으로 쌓아올린 캐릭터가 갑자기 호크아이 드라마에 나타나서 몇 장면 만에 마무리되다 보니, 중간 경위 설명이 있었으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마야 로페즈의 배후로 킹핀이 있다는 설정은 좋았지만, MCU와 넷플릭스 세계관의 연결을 처음 접하는 시청자에게는 맥락 없이 등장하는 인물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MCU가 활용한 핵심 서사 전략은 세계관 확장(Universe Building)입니다. 세계관 확장이란 각각의 작품이 독립적으로 완결되면서도 이후 등장할 작품의 복선과 연결고리를 심어두는 방식을 말합니다. 호크아이는 이 전략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가 예고하는 이후 MCU 전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케이트 비숍이 2대 호크아이가 되어 영 어벤져스(Young Avengers)의 핵심 멤버로 활약할 것으로 보입니다.
- 옐레나 벨로바는 썬더볼츠(Thunderbolts) 프로젝트와 연결되는 복선이 심어져 있습니다.
- 마야 로페즈는 에코(Echo) 드라마로 이어지며 킹핀과의 관계가 계속 전개됩니다.
- 킹핀은 생존 가능성이 높아 데어데블 관련 프로젝트에서 재등장이 예상됩니다.
MCU 세계관의 세대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된 흐름입니다. 코믹스 원작에서도 어벤져스 1세대가 물러나고 영 어벤져스가 그 자리를 채우는 서사가 존재하는데([출처: Marvel Comics](https://www.marvel.com/comics)), 드라마 호크아이는 그 흐름을 스크린에 옮기는 첫 번째 본격적인 발판 역할을 했습니다.
마블 드라마를 쭉 봐온 입장에서 팔콘이 가장 아쉬웠고, 호크아이가 가장 좋았습니다. 거창한 스케일 없이도 한 캐릭터의 피로감과 죄책감,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넘기는 과정을 이렇게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은 드뭅니다. 아직 MCU 드라마를 시작하지 않으셨다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호크아이부터 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편안하고, 생각보다 훨씬 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