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뭘 볼까 고민하다가 넷플릭스를 켰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4년 개봉작 인투 더 스톰. 개봉 당시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났습니다. 그냥 킬링타임용으로 틀었다가 생각보다 몰입해서 끝까지 봤습니다. 89분짜리인데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었습니다.

토네이도 재난 연출, 12년 전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저는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봤습니다. 기대치가 낮았거든요. 근데 토네이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순간부터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강풍에 지붕이 통째로 뜯겨나가고, 자동차가 공중으로 날아가고, 불기둥이 토네이도와 합쳐지는 장면들. 제가 직접 저 상황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2D로 보고 있는데 4D 체험을 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하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사실 토네이도 CG 자체는 요즘 눈으로 보면 약간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영화가 나온 지 12년이 됐더라고요. 그동안 VFX(Visual Effects)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전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VFX란 컴퓨터 그래픽과 실사 촬영을 합성해 시각적으로 불가능한 장면을 구현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재미있는 건 개봉 당시 리뷰들을 찾아보면 CG 칭찬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만큼 당시 기준으로는 최고 수준이었다는 얘기겠죠.
그런데 CG가 약간 아쉬운 것과 별개로,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폭풍 속에서 달아나는 장면들은 지금 봐도 정말 사실적입니다. 실제 세트 붕괴와 물리적 특수효과를 대거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현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작비가 약 5천만 달러(한화 약 700억 원) 수준이었는데, 전 세계 흥행 수익이 약 1억 6천만 달러를 기록했으니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토네이도의 눈 내부를 올려다보는 장면입니다. 기상학에서 토네이도의 눈(eye)이란 회오리 중심부에 형성되는 비교적 고요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극도의 혼돈 속에서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적막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연출이 굉장히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파운드 푸티지 형식이 이 영화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이유
사실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장르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파운드 푸티지란 등장인물이 직접 촬영한 영상인 것처럼 연출하는 영화 기법으로, 화면이 흔들리거나 어두운 경우가 많아 멀미 혹은 가시성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인투 더 스톰은 그 단점을 비교적 잘 잡아냈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화면 밝기가 적당하고 과도한 흔들림이 없어서 호러 계열 파운드 푸티지 영화들에서 흔히 겪는 피로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스톰 체이서 팀이 사용하는 전문 촬영 장비부터, 아들이 남기는 개인 캠코더 영상, 유튜브 스타를 꿈꾸는 청년들의 셀프 촬영까지 시점이 다양하게 교차하는데 이게 꽤 영리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는 크게 세 개의 시점으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 교감 게리(리처드 아미티지)와 두 아들 도니·트레이의 가족 서사
- 토네이도 추격 전문 팀 스톰 체이서와 기상학자 앨리슨(사라 웨인 콜리스)의 이야기
- 조회수에 눈이 먼 무모한 유튜버 두 청년의 셀프 촬영 시점
세 시점을 교차하는 방식이 속도감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다만 유튜버 캐릭터들의 서사는 극 전체의 무게감을 다소 가볍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평가들이 캐릭터의 깊이 부족을 지적한 이유가 이해됐습니다. 실제로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신선도 지수는 21%로 평단의 반응은 냉정했지만([출처: Rotten Tomatoes](https://www.rottentomatoes.com)), 관객 반응은 상대적으로 훨씬 우호적이었습니다. 비평과 흥행 사이의 온도차가 꽤 뚜렷한 작품입니다.
토네이도 영화가 전달하는 것, 스펙터클 너머의 이야기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재난 영화는 스펙터클로만 승부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보고 나면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투 더 스톰은 타임 캡슐이라는 소재를 영리하게 활용했습니다. 아들 도니가 미래의 자신을 위해 영상 편지를 남기는 설정인데, 이게 영화 전반의 주제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의 의미'와 연결됩니다. 연결이 깊게 파고들지는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순수 액션만 앞세운 재난 영화들과는 한 끗 다른 지점입니다. 사춘기 아들과 소원했던 아버지가 재난을 함께 겪으며 유대를 회복하는 서사는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그 부분에서 예측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물에 잠긴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하는 장면은 현실적이지 않은 연출 때문에 잠깐 몰입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이후 거대 토네이도를 피해 배수구에 숨어서 버티는 장면은 진짜로 손에 땀이 났습니다.
스톰 체이서 팀장 피트가 끝내 태풍의 눈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가 하늘 끝에서 마주하는 고요함과 햇살, 그리고 그 순간 지어 보이는 미소. 제가 이 장면 보면서 약간 김새는 생각을 했는데, 비행기 타면 볼 수 있는 하늘 아닌가 싶었습니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토네이도를 뚫고 올라갔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 의미 있는 거겠죠. 미국 기상청(NOAA) 자료에 따르면 실제 토네이도의 최대 풍속은 초속 135m를 초과하는 경우도 있으며, EF5 등급의 토네이도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을 파괴할 수준의 위력을 가집니다([출처: NOAA](https://www.noaa.gov)). 영화에서 묘사된 재난의 규모가 터무니없는 과장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토네이도의 실제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작년에 토네이도 영화 트위스터스를 영화관 4DX로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 영화에서도 미국 사람들의 토네이도에 대한 집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투 더 스톰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하는 사람과 쫓아가는 사람이 같은 공간에 섞여 있다는 설정 자체가 꽤 흥미롭습니다. 89분짜리 토네이도 체험 영화를 찾고 있다면 인투 더 스톰은 충분히 볼 만한 선택지입니다. 깊은 서사나 두꺼운 캐릭터를 기대하고 보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뇌를 좀 내려놓고 재난 스펙터클을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틀면, 89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몰입감 있게 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으니 고민 중이라면 그냥 틀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