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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이사왔다 (흥행 실패, 윤아 매력, 이상근 감독)

myinfo16830 2026. 5. 16. 09:00

코미디 영화가 웃기지 않으면 뭐가 남을까요. 폭우로 도로까지 침수되던 그날, 이미 예매해둔 싸다구 티켓을 전부 취소하고 가까운 메가박스에서 정부 할인 쿠폰으로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빵원 취소표를 노리다 결제 직전에 세 번 연속으로 실패하고 나서야 그냥 쿨하게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영화관에서 제가 느낀 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당연한 진리였습니다.

엑시트 후광 효과와 기대 심리의 함정

영화 마케팅에서 자주 쓰이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후광 효과(Halo Effect)입니다. 여기서 후광 효과란 이전 작품에서 형성된 긍정적인 이미지가 신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심리적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상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엑시트는 2019년 7월 개봉해 94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입니다. 당시 제작비는 130억 원이었고, 그 성공을 발판으로 감독과 배우 임윤아가 다시 뭉쳤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는 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 후광 효과가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악마가 이사왔다의 제작비는 69억 원으로 전작의 절반 수준이고, 손익분기점은 170만 명으로 설정됐습니다. 손익분기점이란 제작비와 마케팅비를 포함한 총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관객 수를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선을 넘기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마감됐습니다. 포스터와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불안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엑시트 감독인데 필살기 하나쯤은 있겠지'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던 게 제 실수였습니다.

 

영화 홍보 전략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봉 시기 선정도 아쉬웠습니다. 흥행 전략에서 개봉 타이밍(Release Timing)이란 경쟁작 분포, 관객 수요, 계절적 특수성을 고려해 최적의 개봉 시점을 선택하는 의사결정 과정인데, 8월 중순이라는 시점은 여름 시즌 대형 블록버스터들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가장 불리한 자리 중 하나였습니다. 실제로 2025년 여름 극장가는 경쟁이 몹시 치열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 확인하면 좋을 체크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예고편을 보면서 한 번도 웃지 못했다면 관람을 진지하게 고민할 것
  • 엑시트 같은 위기 코미디를 기대한다면 장르 자체가 다르므로 기대치 조정 필요
  • 임윤아의 두 가지 캐릭터 변주를 보는 재미로 접근하면 오히려 만족도가 높음
  • 넷플릭스에서 부담 없이 가볍게 보기에는 적합한 구성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한국 코미디 장르 영화의 평균 좌석점유율은 전년 대비 소폭 하락한 추세를 보이고 있어, 코미디 장르 자체의 관객 흡인력이 예전만 못한 상황이기도 합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https://www.kofic.or.kr)).

 

윤아의 분열된 캐릭터와 이도 저도 아닌 서사

제가 직접 봐봤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단연 임윤아였습니다. 낮에는 수수한 생머리의 선지로, 새벽 2시가 되면 펌이 들어간 헤어스타일로 돌변하는 설정인데, 사촌 역할의 주현영이 매일 밤 머리를 해준다는 극 중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실제로 임윤아는 29회 춘사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 수상 결과만으로도 그녀의 연기 변주가 얼마나 유효했는지를 증명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캐릭터 설계 자체가 너무 양극단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두 인물이 어우러지는 느낌이 아니라 각자의 에너지만 따로 소비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안보현이 연기한 이길구는 극단적으로 착하고 소심한 캐릭터로, 현재 콘텐츠 소비 트렌드에서 흔히 말하는 너드남 혹은 에겐남 감성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에겐남이란 '에너지 겐세이 남자'의 줄임말로, 상대방의 감정 소비를 최소화하고 배려가 과한 남성 캐릭터 유형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착함이 너무 과잉 설정되다 보니 안보현이라는 배우 자체가 가진 매력이 완전히 눌려버린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도 문제였습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발단, 전개, 절정, 결말로 나아가면서 인물의 갈등과 성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서사 설계 방식을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절정에 해당하는 갈등 해소 장면이 지나치게 싱겁게 처리됐습니다. 퇴마사처럼 등장한 영식 캐릭터가 결계를 치고 진지하게 대립 구도를 만들더니, 안보현의 어설픈 코미디 검도 장면 하나로 흐지부지 마무리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관객에게 쌓아둔 긴장감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남는 건 허탈함뿐입니다.

 

선지 안에 깃든 존재가 악마가 아니라 한이 서린 영혼이었다는 반전도, 오컬트 장르에서 이미 수십 번 다뤄온 소재라 신선함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한 가문을 수십 년간 힘들게 만든 원인이 결국 그 정도의 이야기였냐 싶은 허탈감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남았습니다. 영화진흥법에 따라 국내 상업영화의 스토리 개발 지원 사업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각본의 완성도가 흥행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는 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정보시스템](https://www.kobis.or.kr)).

 

영화 자체가 팝콘 무비로서의 가벼운 즐거움은 어느 정도 제공합니다. 하지만 코미디와 로맨스, 오컬트 세 가지를 모두 담으려다 어느 것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결과물처럼 보입니다. 여러 재료를 잘 버무렸는데 정작 맛이 특별하지 않은 요리.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내내 떠올렸던 비유가 그것이었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조명받고 있다는 건, 결국 이 영화가 극장용 스케일보다 OTT 감성에 더 어울리는 작품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힘들게 예매하고 폭우 뚫고 극장까지 가서 봤던 저로서는, 솔직히 집 소파에서 봤더라면 평가가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상근 감독의 다음 작품을 아직 기다리고 있지만, 이번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가볍게 한 편 소비하는 용도로 권하고 싶습니다. 예고편을 보고 한 번도 웃지 못했다면, 그게 이 영화의 전부라는 걸 미리 알고 들어가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